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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랑에 '푹' 빠진 오클랜드 대학교 마가렛 키친 교수

뉴질랜드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커뮤니티 모임에 갔다가 본의 아닌 개명(?)을 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명'자 발음이 잘 안 되는 키위들이 힘겨운 발음으로 내 이름을 '미옹'이라 불렀다. '아니, 야옹도 아니고 미옹은 또 뭐람…' 결국 주변 성화에 못 이긴 척, 난 아무 연고도 없는 미쉘이 되었다. 고국을 떠나 와 처음으로 나의 정체성은 흔들렸다.
  그 이후 아주 가끔 한국을, 한국인의 문화를 존중하는 이들을 맞닥뜨릴 때면 개명한 이름 쓰기가 남우세스러웠다. 그들의 관심과 사랑은 한국에도 있고 뉴질랜드에도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통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뼈저리게 느끼곤 한다.
  마가렛 키친교수도 그랬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 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클랜드내 6명의 교사들 한국어 연수 위해 한국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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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렛의 '한국 사랑' 시작은 17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그녀가 근무했던 파쿠랑가 칼리지의 ESOL반에 한 동양인 여학생이 전학을 왔다. 그것도 아주 먼 길을 왔다. 한국이란 나라에서.(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그 여학생의 이름은 크리스티나 박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한 어린 소녀를 낯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었다.
  2년 후, 단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소수민족에 대한 문화의 이해와 지속적인 노력의 열매는 뉴질랜드 정부의 협조를 얻어내는 성과를 거둔다. 마침내 마가렛을 포함한 오클랜드 안에 있는 6명의 교사들이 모여 한국 학생들을 맞이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게 되었고, 뉴질랜드 안에 있는 한국 학생들에게 전폭적인 관심이 쏠리게 된다.
이어 1995년에는 뉴질랜드와 한국 정부의 후원으로 6명의 교사들은 어학연수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 당시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는 5~6주 정도 이들을 위한 특별한 커리큘럼을 만들어 연수를 받게 했다.
  2년 뒤인 1997년, 두 번째 한국 방문이 이어지면서 뉴질랜드를 찾는 유학생들은 물론, 한국 사회 분위기는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자녀들의 교육을 위한 이민자들의 행렬이 줄을 잇게 된다. 뉴질랜드 역시 교육 환경이 좋은 나라로 간택(?)된 나라중의 하나였다.
  "요즘은 어느 곳에서나 한국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 한국인들의 파워를 실감합니다. 10년 전, 한국어를 배워서 키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겠다는 기대로 부풀었었는데… 오히려 아이들이 훨씬 빨리 배우더군요. 한국말 배우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특히 존대말 구분은 너무 복잡해서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유창하진 못했지만 몇 마디 한국말을 생각나는 대로 주워 담으며 쑥스러워하는 그녀의 웃음 앞에서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따끈한 온돌방 체험...여왕된 듯 황홀한 대접  못잊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울 부산 포항 등을 돌며 홈스테이를 했는데, 난생 처음 여왕이 된 듯 착각이 들 정도로 황홀한 대접을 받았어요. 아침이면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에 둘러앉아 온 가족이 식사를 하는 풍경이 너무나 보기 좋더군요. 게다가 저는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이루는데 따끈한 온돌방에서 얼마나 잘 잤는지 몰라요."
  그 옛날 먹었던 불고기와 잡채, 비빔밥… 훈훈한 한국 인정의 맛을 잊지 못한다는 그녀에게 마음에 쏙 드는 한국 문화를 3가지만 말해 보라고 했더니 1.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손님 접대를 잘한다 2. 한국 과일과 맛있는 음식들 3. 아름다운 가을 숲과 아기자기한 오솔길의 조화를 손꼽았다. 
  그녀의 한국인을 향한 애정은 줄기차게 이어져 오클랜드대학교 테솔 교육교수로 있으면서도 매주 목요일(오전 10시~11시 30분)과 금요일(저녁 7시~8시 30분), 한국인 학부모들을 위한 영어 특강을 하고 있다. 정착을 위한 실용 영어는 물론, 뉴질랜드의 교육 커리큘럼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고 있어 학부모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대부분 한 가지 언어만을 사용하며 살아가기 쉬운데 이중 언어를 쓸 수 있다는 것은 두뇌의 축복입니다. 하지만 이민자들의 경우, 아이들이나 어른 모두 새로운 언어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자기 정체성에 대한 상실감이 큽니다. 대체적으로 모국어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 아이들이 영어나 다른 언어를 배울 때도 큰 장점을 취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교실 수업에서 쓰는 학구적인 언어뿐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학습되어지는 사회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현지 공동체와 접촉할 수 있도록 자꾸 밀어 넣어야만 합니다."

학부모 위한 특강, 아이들 위한 문화중재자로  나서
  그 뿐 아니다. 키친교수는 한국 아이들을 위한 문화 중재자로 나서기로 작정했다.
  예를 들면 한국 아이들은 사람들 앞에서 소리 내어 코 푸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교육 받았다. 그래서 요즘과 같은 환절기에 교실 어디선가 맘놓고 코를 풀어대는 현지 아이들 사이에서 훌쩍대는 한국 아이들이 있을 경우 키위 선생들은 난감해 한다. 그들의 무례함(?)을 이해하지 못해서…
  이러한 사소한 문화의 '다름'으로 비롯된 소통의 벽을 허물기 위해 우리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생활 문화를 알리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보다니타운 칼리지의 하광자선생(상담교사, Facilitator)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고 있으며, 자료가 완성되면 뉴질랜드 교육 개정에도 반영시킬 계획으로 추진중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각 칼리지 교사들이 교육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자료들이 모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초등학교 때는 잘 어울려 놀던 아이들이 칼리지에 가면 각 나라별로 나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사들이 먼저 자각하고 아이들을 융화시키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행복의 바탕이라고 했다. 정체성의 힘은 그만큼 위대하다. 하지만 정체성의 문제는 비단 우리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뉴질랜드 교육부의 커리큘럼은 작년까지만 해도 학업 위주였으나 점차적으로 도덕적 정체성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키친교수가 한국의 윤리 과목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특별한 이유이기도 하다. 간섭 절대 사절인 그들의 개인주의 폐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180여 개국의 나라가 한통속이 되어 사는 나라 뉴질랜드. 인류가 평화로운 '지구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강조하지만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약자를 배려하기 보다는 언제나 강자의 위치에서 큰소리치며 살기 마련이다. 전형적인 다민족, 다문화 사회를 이루고 있는 뉴질랜드는 새겨 들을 말이다.
  마가렛 키친교수처럼 한 소수민족의 개개인이 제 자리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존중하고 격려하며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문화의 다양성은 유지된다. 
  이제 그녀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흘러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가을 햇볕 같이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작은 '사랑의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은 사랑을 부른다.                                                                         
                                                          글/장명옥기자
                                                       사진/안재홍기자
 원문 :  뉴질랜드 크리스천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