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기본정보
한국 아이 입양 꿈꾸는 키위 루비네 가족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4. 30. 21:01
뉴질랜드 유일의 크리스천 신문 Christian Life 에서 제공되었습니다.
정말 마음이 훈훈해지는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감이 임박한 어느 날 저녁, 신문사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업무상 걸려온 전화가 아니었다. 그런데 모양새가 좀 어색했다. 본인을 좀 취재해 줬으면 좋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한국인도 아닌 키위 아줌마(파케하)의 뜬금 없는(?) 취재 요청을 받은 일은 처음이었다.
이유를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한국 아이를 입양하고 싶은데, '크리스천라이프'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친하게 지내고 있는 한국 친구가 신문사라면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연락처를 주었단다.
하버브릿지를 건너 오클랜드의 대표적인 키위 마을인 데본포트에 도착했다. 밤 10시에 가까웠다.
집 안에 들어서자 한 폭의 그림 같은 오클랜드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아홉 살 배기 꼬마 루비(Year 4)가 밤늦게 찾아온 낯선 손님을 위해 종종거리며 차와 쿠키를 날라왔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에 발그레한 양 볼 가득 담은 수줍은 미소가 정말 어린 천사의 모습을 닮았다.
"한국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요."
"우리 애가 한국 친구들을 무척 좋아해요. 학교에 있는 베스트 프렌드가 다 한국 아이들이에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한국 국적의 여동생과 살게 해주고 싶어요. 저 역시 한국 사람들과 10여 년이 넘도록 정을 나누며 살아 왔고요"
트리시는 오클랜드 서쪽 지역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몇 에이커에 달하는 넓은 농장에서 뛰놀며 보냈다. 칼리지를 졸업한 후 간호사, 언론인, 비행기승무원, 홍보우먼 등으로 열정적인 젊은 날을 수놓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결혼도 늦어졌다. 아이(루비)도 30대 후반에 얻은 '보석'이다.
"루비를 낳은 후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었어요. 루비를 출산한 후 여섯번의 유산을 겪으며 천국과 지옥을 오갔습니다. 처음 한 두 번은 '뭐 그럴 수 있겠지' 그랬는데 서 너 번 계속 되면서 롤러 코스터를 탄 것 마냥 마치 공중에 냅다 던져져 피가 거꾸로 솟는 공포 가운데서도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극한의 절망을 느꼈죠.
결국 2년 전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의사의 통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입양을 결심했지요."
첫 아이를 낳을 때 이미 노산으로 힘겨웠던 트리시에게 계속된 유산과 정신적인 황폐함은 입양의 꿈을 안게 되면서 알 수 없는 사랑의 별 하나를 가슴에 품게 만들었다. 생면부지 일면식도 없는 한국아이의 입양을 간절히 바라게 된 것이다. 그녀의 입양 준비는 루비를 출산하기 위해 공들였던 정성과 설레임 그 이상의 것이었다.
"남편도 아이들을 엄청 좋아했지만 처음엔 입양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부부는 한마음이 되었어요. 지난 1년 반 동안 헨리와 함께 도서관을 찾아 다니며 입양에 관한 책을 찾아 읽은 것만해도 100권이 훨씬 넘을 거예요.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이미 입양을 했던 사람들을 만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입양이 우리 가족을 위한 최상의 선택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지요. 1년 코스의 입양 부모를 위한 교육도 마쳤고, 조만간 한국을 방문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트리시의 남편 헨리는 해피메이커다. 그의 가족들을 위한 헌신과 센스있는 위트와 유머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해준다. 매일 새벽 3시면 어김없이(물론 트리시의 도움으로) 일어나 4시부터 9시까지 하루의 일을 마무리한다. 그는 라디오 뉴스레터 부편집장이다. 헨리가 새벽형 인간의 삶을 살게 된 것도 사랑하는 딸 루비와 아내를 위한 결정이었으며, 그의 즐거움이다.
"와우~! 너무 행복합니다. 사는 게 이렇게 행복한 줄 알았더라면 더 일찍 결혼했을텐데… 제 아내 트리시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아주 쾌활합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뿐 아니라 창의적입니다. 집에 있을 때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루비를 가르치곤 하죠. 가끔은 루비를 위해 직접 책을 쓰기도 한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바로 아이들을 끔찍하게 좋아한다는 거죠. 아내가 입양할 아기와 더불어 행복하길 원합니다."
가슴으로 잉태해서 키운 별
14살 때 영국에서 뉴질랜드로 이민왔다는 헨리는 자신의 누이가 17살 때 그녀의 첫번째 아이를 부득이한 사정으로 입양을 보냈다고 한다. 때문에 가족 모두가 헨리부부의 입양 의지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온다.
"출산에 고통이 따르듯 입양 역시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결정하기 전까지 많은 정성을 들이고, 가족간의 뜻을 모은 후, 가슴으로 잉태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희망은 한 아이를 우리 가정에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국 아기를 입양할 수 있는 행운을 안게 된다면 루비와 똑 같은 사랑을 나눌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리며 준비해 왔습니다."
그는 내년에는 새 가족이 될 루비의 동생까지 네 명의 가족이 함께 캠핑할 수 있는 텐트까지 미리 준비해 놓았다고 귀띔했다.
"한국 친구들이 훨씬 더 좋아요."
이들 부부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0여 년 전의 일이다. 블록하우스베이에 집이 한 채 있었는데 마침 뉴질랜드에 막 도착한 한국 가정에 렌트를 주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영어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함께 전통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며 관공서 방문 등 영어가 미숙한 이민초보자가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달려가 힘이 되어 주곤 했다.
그 이후 렌트 세입자가 바뀔 때마다 연이어 한국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그들이 뉴질랜드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보살핌을 해 주었다.
루비, 한나, 그레이스… 내일 있을 크리스마스 파티에 친구들을 초대한 어린 루비의 손길이 바쁘기만 하다. 식탁 위에는 알록달록 색연필로 예쁘게 그려진 친구들의 이름이 오똑하니 앉아 하루 먼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산타가 그려진 컵과 접시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차려 놓으며 들떠 있는 아홉 살 루비는 오늘 밤 아무래도 잠을 설칠 것만 같다.
"모든 친구들이 다 좋긴 하지만 저는 한국 친구들이 훨씬 더 좋아요. 그래서 제 동생도 한국 아기였으면 좋겠어요. "
루비는 알바니에 있는 사립초등학교에 다닌다. 수년 전부터 한국 아이들이 많이 입학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다 보니 한국 친구들이 많다. 그 좋은 친구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유독 더 한국동생을 보고 싶은 이유다.
입양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마음을 먹기도 어렵지만 앞으로 닥칠 예기치 않은 여러 어려움에 미리 머리를 흔드는 게 대다수 사람들의 입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람을 잘 봐, 배 아파 낳은 아이는 아니라도 또 다른 피붙이를 한국아이로 택해 입양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힐 수 있는 트리시 부부의 마음가짐이 소중하게 전해진다.
숨가쁘게 달려온 2007년도 어느덧 끝자락에 와 있다. 성탄과 연말이 되면 훈훈한 소식이 그 어느 때보다 그리운데, 트리시 부부와 아홉 살 천사 루비네 가족에게 좋은 일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 이다.
루비네 집을 나오는 밤 하늘에 유독 반짝이는 한 개의 별이 바다에서 배를 인도하고 있었다.
글/장명옥기자
사진/안재홍기자